목양편지
한글 사용 감사!
2026-10-10 08:20:58
이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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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은 1446년 훈민정음 반포 580돌이자, 1926년 조선어연구회(현 한글학회)가 '가갸날'이라는 이름으로 한글날을 처음 제정한 지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랑스럽게 사용하는 이 한글을 사용할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일제강점기입니다. 이 시기의 한반도는 일본에 주권을 빼앗기고, 한국말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금지당했으며, 일본말을 사용하고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았던 시기에 암울했던 이 땅에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온 분들이 기독교 선교사남들이었습니다. 1884년에 미국 공사의 주치의 자격으로 조선에 들어온 알렌 선교사를 필두로, 이후 1945년 일제로부터 광복을 되찾기까지 약 1,500여 명의 외국인 선교사들이 이 땅을 찾았습니다. 개신교 선교 100주년의 해인 1984년까지는 약 3천 명의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 선교에 헌신했습니다. 그들은 당시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극소수의 엘리트들로서 자국에서도 얼마든지 안락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난한 이 땅에 복음을 들고 가족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선교사님들은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한글 교육을 통해 성경을 가르치며 복음 전파에 힘썼습니다. 더불어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설립해서 죽어 가는 생명을 살려 내며 이 나라를 근대화시켰습니다. 이것이 일본 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한글을 지켜낼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동력 중에 하나였습니다.

조선어학회 또한 기독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조선어학회를 이끌어가던 다수의 지도자들과 학자들이 배재학당, 연희전문학교, 이화학당, 오산학교, 고창보고와 같은 기독교학교 출신들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최현배, 이극로, 정태진, 김윤경과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일본은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을 계기로 혹독한 고문과 한글말살정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지도자들과 한국교회 그리고 선교사님들이 피나는 희생을 감수하며 끝까지 한글을 지켜냈습니다. 그 결과 오늘 우리가 한글을 이렇게 자유롭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마음껏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자유롭게 사용하는 이 한글이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가 지금 한국말로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고 예배드릴 수 있다는 이 한 가지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면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의 모든 일상이 감사로 가득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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